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저 하늘에도 슬픔이 (문단 편집) == 여담 == * 제3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제5회 [[대종상]]에서 특별장려상(김용연)을 수상했다. * [[대구광역시]]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대구 사투리가 나오지만 성우들의 사투리 연기가 좋은 편은 아니다. 몇몇 단어들은 잘 살린 편. * 촬영은 실제로 대구에서 이루어졌으며, 당시 대구 시가지는 물론, 대구의 뒷골목과 빈민들이 많이 살던 앞산 비행장 일대 등 비참했던 1960년대 빈민가의 모습을 꽤 잘 보여준다. * 1965년 원작, [[저 하늘에도 슬픔이(1984)|1984년 리메이크작]]에 등장한 독특한 생김새의 대구 명덕초등학교 구 본관은 아쉽게도 1985년 철거되었다. * 영화는 반쯤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주인공 이윤복씨의 두 번째 일기장 '저 하늘에 이 소식을'을 보면 여전히 암울한 상황이다. 동생 이윤식씨의 회상을 옮겨보자면, 집을 산 나머지 수익은 정부 기관에서 위탁 관리를 했는데 1960-1970년대는 한해 물가상승률이 10% 이상인 경우가 허다해서 화폐가치 하락으로 한동안 생활이 힘들어졌다고 한다. * 주인공 이윤복은 동생들을 위해 고교만 마치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유명세가 부담스러워 '재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1990년 만40세를 채우지 못하고 간경화로 요절하고 말았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325465|#]] * 2004년 동생 이윤식의 뜻으로 그의 일기 두 편이 재판되었고,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 같은 원작으로 [[오시마 나기사]]가 '윤복이의 일기'로 영화화한 적이 있다. [[https://youtu.be/wcqXTfgqOEI|#]] 본작과 달리, 일기를 차용해 한국 현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또한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한국 문학이라고 한다. 때문에 일본에서도 지명도가 있다. * [[소설가]]이자 [[영화감독]] [[이창동]]이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이창동은 이윤복과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는데, 영화 촬영 당시 이윤복 학교를 로케이션하다가 출연했다고 한다. * 이윤복의 담임교사였던 김동식 목사는 2007년 8월 20일 향년 7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 2013년까지 이 영화는 [[유실 영화|필름이 유실]]된 상태였다. 한국의 흥행에 힘입어 대만으로 수출되었지만 대만영상자료원에서도 찾지 못하다가, 대만 수출명으로 추정되는 《추상촌초심(秋霜寸草心)》을 목록에서 발견했다. 영화 타이틀은 수입 국가의 배급업자가 입맛대로 변경하기 때문에 추적이 쉽지 않았다. 확인 결과 《저 하늘에도 슬픔이》가 맞았고 다행히 중국어 더빙이 아닌 자막이라 한국어 사운드도 보존된 상태였다. 대만 영상자료원이 보유하고 있던 듀프 네거티브 필름[* 원본 네거티브 필름 → 마스터 포지티브 필름 → 듀프 네거티브 필름 → 극장용 프린트]을 빌려와 2014년 복원하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https://youtu.be/XDv6bue_vUQ|영상 보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